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모두 남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로 영국령 인도의 분할 이후에 24년간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단일국가였습니다. 1971년 동파키스탄이 독립하면서 현재의 방글라데시가 되었습니다. 이글에서는 이 두나라가 분리된 원인과 양국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방글라데시의 독립과 파키스탄의 승인
1947년 영국령 인도의 분할로 파키스탄은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구분되어 관리 되었습니다.동파키스탄은 벵골어를 사용하는 벵골 인들이 주를 이루었고, 서파키스탄은 우르두어를 사용하는 펀자브인을 비롯해 여러 민족이 섞여있었습니다. 양 지역은 인종, 언어, 문화, 정치 등에서 차이가 있었으며, 동파키스탄은 중앙정부의 차별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어서 소외되었고, 공용어를 정할 때에도 영어와 우르두어만 인정하고 벵골어는 소외시킵니다. 1970년에 치러진 선거에서 동파키스탄의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이 이끄는 아와미 리그가 승리했으나 중앙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 사건이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됩니다. 이후 1971년 3월, 서파키스탄에서는 동파키스탄의 지식인, 정치운동가, 힌두교도 등을 대상으로 동파키스탄 지역에 학살을 시작합니다. 이에 동파키스탄은 인도와 소련의 지원을 받아 게릴라 부대를 결성하고, 독립을 선언합니다. 1971년 12월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하고, 인도와 현 방글라데시의 연합군이 파키스탄군을 물리치며 독립을 확보합니다. 파키스탄은 1974년 방글라데시를 정식 국가로 인정합니다.
2. 양국 관계의 수립과 외교적 균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관계는 1974년부터 개선되어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가 방글라데시를 방문하여 전쟁 기념비에 경의를 표한 일화가 있습니다.이후 1980년대에도 파키스탄 다수의 정부 수반들이 방글라데시를 공식 방문하였고, 무역, 문화 등에서 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2013년 방글라데시는 전쟁 범죄로 재판을 받은 이슬람 지도자 '압둘 콰데르 모라'를 사형에 처하고 파키스탄은 이에 반발하여 사형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일을 계기로 양국관계에 금기 가기 시작하는데 2016년에는 방글라데시의 테러단체에 파키스탄이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파키스탄 정부는 이에 대해 근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합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현재 양국의 외교적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마치며,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공통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독립전쟁과 전범재판으로 갈등을 겪었습니다. 혼란한 시기를 겪었으나 무역, 문화, 테러방지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고, 2010년 이후로 방글라데시안에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파키스탄이 연루되었다는 의심으로 외교적 관계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은 크게는 종교가 원인이었지만,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독립의 원인은 차별과 소외였습니다.